
복잡한 반전 없이 그냥 시원하게 두들겨 패는 영화, 진짜 재미없을까요? 제이슨 스테이섬 주연의 2024년 액션 스릴러 <더 비키퍼(The Beekeeper)>를 보고 나서 제가 처음 든 생각은 정반대였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에서 시작해 비밀 초정부 조직의 최정예 요원이 거대 권력을 향해 홀로 맞서는 이 영화, 솔직한 시선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제이슨 스타뎀과 제러미 아이언스, 두 배우의 시너지
액션 영화에서 명대사가 남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터지고 부서지는 장면에 정신이 팔리다 보면 대사가 귀에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메모까지 했던 대사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비키퍼다. 벌집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바로잡는다."
이 한 마디가 사실 영화 전체의 정체성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비키퍼(Beekeeper)란 표면적으로 양봉업자를 뜻하지만, 영화 안에서는 국가 시스템이 통제 불능일 때 비로소 움직이는 범세계적 비밀 조직의 요원을 가리키는 코드명입니다. 쉽게 말해,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벌집의 질서를 지키는 마지막 심판자를 의미합니다. 이 설정 하나가 주인공의 행동 하나하나에 묵직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합니다.
명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영화 중반부의 콜센터 빌딩 단독 침투 시퀀스를 고릅니다. 화려한 CG 대신 제이슨 스타뎀 특유의 근접 타격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면인데요. 스타뎀이 이걸 몸으로 표현해 내는 걸 보면,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제이슨 스타뎀이 나오는 영화는 어느 정도 믿고 본다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어차피 주인공이 다 이기는 거 아니냐"며 식상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후자에 더 가까운 편이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조금 다른 인상을 받았습니다.
스타뎀은 이 영화에서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습니다. 분노도, 슬픔도 눈빛 안에 꾹꾹 눌러 담는 연기를 하는데, 그게 오히려 캐릭터의 위압감을 두 배로 끌어올립니다. 아우라(Aura)라는 표현이 딱 맞는데, 스타뎀은 이 아우라만으로 상대 배우를 압도하는 몇 안 되는 배우입니다.
여기에 제러미 아이언스가 전직 CIA 국장 역할로 합류하면서 영화의 무게중심이 한층 단단해집니다. 아이언스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사건의 배후를 통제하려 하지만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며 균열을 보여주는데, 이 연기가 영화가 단순한 B급 하드보일드 액션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균형추를 잡아줍니다. 이 둘의 시너지 덕분에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몰입감 있게 봤습니다.
단, 빌런 진영의 다른 캐릭터들은 아쉽게도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묘사됩니다. 일부에서는 "입체적인 악당이 없다"라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는데, 저도 이 부분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영화가 던지는 현실적 경고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 오락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이 되는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 피해가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에 평생 정직하게 살아온 할머니 엘로이즈가 자선 기금 237만 달러, 한화 약 30억 원을 한순간에 보이스피싱으로 털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가 처음 그 장면을 볼 때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저도, 저희 어머니도 비슷한 수법의 전화를 받아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픽션 속 이야기로 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수법이 고도화되고 있어서, 실제로 국내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점차 늘어가는 상황에, 이 영화가 얼마나 현실에 밀착된 소재를 다루는지 실감됩니다.
영화는 이 범죄를 단순히 개인 간 사기로 보지 않습니다. 법의 허점을 악용하고 그 뒤에 대통령의 아들이 포함된 부패한 권력이 그 뒤를 봐주는 구조적 카르텔로 묘사하며 사회적 맹점을 정면으로 고발합니다. 법이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는 구조적 약자의 억울함을 누군가 나서서 응징해 주기를 바라는 대중의 심리를 이 영화는 정확히 건드립니다.
감독이 직접 보이스피싱 피해를 겪고 화가 나서 만든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만큼, 범죄자들에 대한 응징 묘사가 거침없고 통쾌합니다. 또한 시스템이나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이 거대한 피싱 카르텔을 향해, '비키퍼'인 애덤 클레이가 초월적 권한으로 이 범죄 카르텔을 허물어 나가는 과정이 관객의 대리만족 욕구를 제대로 겨냥했다고 봅니다.
총평: 뇌를 비우고 타격감에 몸을 맡겨야 제맛인 영화
이 영화가 완벽한 액션 대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의견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사이다 영화가 드물다는 의견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저는 두 의견 모두 맞다고 봅니다.
아쉬운 부분을 솔직히 짚으면, 주인공의 무적 캐릭터 설정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점이 가장 뼈아픕니다. 국가 기관 전체가 나서서 막아도 아담 클레이는 너무 쉽게 적들의 본거지를 초토화합니다. 제가 기대했던 손에 땀 쥐는 위기감보다는 "어차피 이기겠지"라는 안도감 속에서 장면이 소비되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또 후반부로 갈수록 대통령을 비롯한 핵심 권력과의 대치가 지나치게 만화적으로 과장되면서 탄탄한 스릴러를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약간의 허무함을 줄 수 있습니다.
반면 이런 시각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 개연성을 따지는 건 탕수육에 소스를 왜 찍어 먹냐고 싸우는 것과 같다"는 거죠. 저도 어느 정도는 공감합니다. 존 윅(John Wick)이 하나의 킬링 유니버스를 만들어낸 것처럼, 비키퍼 역시 그 흐름을 잇는 새로운 액션 프랜차이즈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영화사적 의미도 있습니다. 실제로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정리하면, 이 영화는 정교한 각본보다 원초적인 타격감과 사이다 응징의 쾌감을 원하는 분들에게 최적화된 작품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솔직한 감상은, 스토리의 빈틈을 따지기 시작한 순간보다 그냥 몸을 맡기고 봤던 순간이 훨씬 재밌었다는 것입니다. 뇌를 잠깐 쉬게 하고 싶은 날 밤, 이 영화는 꽤 훌륭한 선택지입니다.
결론
더 비키퍼는 각본의 치밀함보다 제이슨 스테이섬의 타격감과 보이스피싱이라는 현실 소재가 맞물려 만들어낸 해방감이 핵심인 영화입니다. 후반부의 만화적 과장이나 평면적인 빌런들이 아쉽긴 하지만,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그 단점들이 생각보다 관람의 즐거움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악당들이 응징당하는 장면에서 속이 시원해지는 그 감각, 복잡한 설명 없이도 충분히 통하는 감각입니다.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화끈한 액션 파티가 필요한 날 밤, 아담 클레이가 벌집을 지키는 방식을 한번 지켜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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